본문 바로가기
지식플러스,

거절 잘하는 사람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by 지에스플러스 2024. 10. 16.
728x90
반응형
SMALL

거절 잘하는 사람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할 일이 산더미인데 옆 팀 동료가 자꾸 커피 타임을 갖자고 메시지를 보내온다.

마지못해 카페테리아로 향했는데 동료의 수다는 끝날 줄을 모르고 이어진다.

 

'아 정말, 오늘 퇴근 전까지 마무리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

이때 당신이라면 몇 번 선택지를 고르겠는가.

 

 

① 남의 속도 모르고 주절주절 떠들지 좀 말라고 시원하게 포효해 준 뒤에 사무실로 올라가 일을 마무리 한다.

 

② 오늘 퇴근 전까지 마무리했어야 하는 중요한 프로젝트를 포기하고 회사를 그만둔다.

 

 

아마도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①과 ②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타협점을 찾을 것이다.

 

상담을 하다 보면 "선 넘는 사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라는 고민보다 더 많이 나오는 질문이 있다.

바로 "이 사람 지금 선 넘은 것 맞나요?"다.

그만큼 누군가가 선을 넘었는지에 대해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대다수가 어렵지 않게 동의하는 '선'도 있지만 첨예하게 의견이 갈리는 '선' 역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만약 다수가 합의하는 명백한 선은 넘지 않았는데 내 마음이 불편하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상대가 명백히 잘못한 것은 아니니 내가 내 마음을 다스리기만 하면 되는 걸까?

 

그러기엔 뭔가 아니다 싶을 것이다.

 

 

 

 

이 문제는 '선'을 조금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풀린다.

 

'잘못'이 아닌 '나의 감정'에 초점을 맞춰 보자. 그것이 바로 '자아 경계(ego boundary)'다.

자아 경계란 나의 몸과 마음이 온전히 나의 것이라고 여길 수 있는 기준을 의미한다.

 

자아 경계 안에서 개인은 안정감을 느끼고 삶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다.

자아 경계로서의 선은 사회적인 원칙으로서의 선과는 별개이다.

 

우리가 타인을 어떻게 대할지에 대한 건강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자신의 자아 경계가 어디까지인지를

알아내고 그것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자아 경계를 무시하고 사회적인 경계에만 의존하여 판단하려다보면 통제력을 잃어가는 상황에서도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게 옳은지 몰라 혼란스러워하다가 나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게 된다.

 

 

 

 

나를 지키는 '선'

 

자아경계가 어디까지인지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대신 판단해 줄 수 없기 때문에 

어렵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쉽기도 하다.

 

내가 불편하면 그건 불편한 것이다.

다만 앞서 말했듯 내가 불편하다는 것이 반드시 상대의 탓이나 책임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자. 자아경계는 물리적 경계, 물질적 경계, 정서적 경계로 나눌 수 있다.

 

물리적 경계는 개인적인 공간과 시간, 그리고 신체적인 접촉의 정도를 의미한다.

함께 사는 사람이 내 방에 갑자기 들어오는 것이 괜찮은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일터에서도 그렇다.

내 자리에 다가와 책상 위의 물건을 만지작거리는 동료가 그리 불편하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몹시 불편한 사람도 있다.

 

물론 그 동료가 친한 사람인지 아닌지도 문제다.

스킨십도 마찬가지다.

친근감을 표현할 때 어깨를 가볍게 툭 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이 소스라치게 싫은 사람도 있다.

 

앞서 등장했던 시간도 그렇다.

업무 중 동료와 대화하는 데 할애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시간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일과 취미활동, 친구와의 만남, 휴식 등에 들이는 시간을 각각 어느 정도의 비율로 배분할지

역시 각자가 생각하기 나름이다.

 

다음으로 물질적인 경계는 자신의 소유물과 금전을 공유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의미한다.

누군가는 직장동료에게 자신의 차를 빌려줄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에게도 빌려주는 것을 꺼릴 수 있다.

 

돈을 주고받는 것도 비슷하다.

아무와도 채무 관계로 얽히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는 동시에 일정 정도는 쉽게 빌려주고

빌리기도 하는 사람이 있다.

 

마지막으로 정서적 경계는 나의 생각과 감정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하고 느껴도 되는 것이라고

여겨지고 있는지를 뜻한다.

 

사무실에 에어컨을 틀어 놓았을 때 같은 온도를 누군가는 춥고 누군가는 덥다고 느낄 수 있다.

그것에 대해 누군가에게 "이 정도면 안 추운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어쨌거나 당사자가 추우면 추운 것이다.

 

또한 요청하지 않은 호의를 받았을 때 기쁘고 고마운 사람도 있지만 부담스러운 사람도 있다.

그 호의가 사회적 선을 넘지 않았더라도 당사자는 얼마든지 버겁고 싫을 수 있다.

 

 

 

 

관계 안에서는 이런 자아 경계가 흔들리는 상황이 반드시 생긴다.

이는 보통 타인에게 거절의 메시지를 전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결국 '거절'이 문제인 것이다.

 

나는 자리로 돌아가서 할 일을 하고 싶은데 동료는 나와 대화하는 시간을 너무 즐거워하는 것 같을 때,

자신의 어머니가 어렵게 보험 일을 한다며 하나만 가입해 달라고 동료가 간곡히 부탁을 해올때,

내가 맡은 업무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는 동료가 가벼운 업무 처리 하나만 도와달라고 요청할 때,

마음먹고 혼자 쉬기로 한 주말에 오랜만에 보자고 할 때,

 

사회적인 선과 무관하게 내 마음의 선이 흔들릴 때 우리는 어떻게 거절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 거절이 누군가에게는 왜 그토록 어려운 일일까?

 

거절하는 일을 특히 괴로워하는 사람의 마음 안에는 자신의 경계가 존중받지 못했거나 자신보다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우선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던 기억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타인을 기쁘게 해줘야 한다는 압박을 받았거나

("내가 지금 비참한 이유는 네가 실망스러운 점수를 받아 와서야.")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인정받지 못했던 경우

("너는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왜 싫다고 하니, 유별나다.")다.

 

이들은 그저 자기 영역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을 가졌을 가능성이 크다.

 

이때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것, 원망을 사는 것,

그리하여 결국에는 타인으로부터 버림받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함께 자리 잡았을 수 있다.

 

'거절 민감성(rejection sensitivity)'이 높은 경우에도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억제하기 때문에 

자아 경계를 잘 지키기 어렵다.

 

거절 민감성이 높은 사람은 중립적인 단서에서도 지레 거절을 예상하거나,

거절당했을때 남들보다 부정적인 감정을 강하게 느낀다.

 

내가 거절당했을 때의 괴로움이 크기 때문에 타인도 그만큼의 괴로움을 느낄 것이라고

예상하고 거절을 힘들어할 수 있다.

 

또는 자신의 거절로 인한 타인의 부정적인 감정을 마주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거절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도 있다.

 

거절을 당했을 때 스스로를 탓하며 슬픔과 우울감이 커지는 사람이 있는 반면 분노와 공격성이 커지면서

자신을 거절한 타인을 전적으로 탓하는 사람도 있다.

 

거절 민감성이 똑같이 높은 경우에도 거절을 슬픔과 우울감으로 처리하는 사람일수록

자기 억제가 심하기 때문에 거절하기를 더욱 어려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반드시 어느 순간에는 거절을 해야만 한다.

 

제일 안타까운 경우는 거절을 하지 못해 끙끙 앓다가 어느 순간 인내심이 바닥나 누군가에게 그간

억제했던 분노를 한꺼번에 표출해 버리는 경우다.

 

맨 처음 소개했던 사례에서 동료에게 별안간 소리를 지르거나 갑자기 퇴사를 결심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마음의 압력밭솥이 빵 하고 터지기 전에 김을 조금씩 빼줘야 하는 것이다.

 

 

 

 

어렵지만 쉽게 거절하는 법

 

그렇다면 거절은 어떻게 해야 할까?

 

흔히 거절을 굉장히 비장한 것처럼 생각해서 상대에게 곧이곧대로, 

될 수 있으면 단호하게 통보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지 않으면 비겁하거나 비굴한 것이라고까지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누군가를 거절하는 일조차 버거운 사람이 태도까지 매사 단호해야 한다면 그것은 어마어마한 이중고다.

 

우리는 나의 경계를 지켜내고자 하는 목적만 달성하면 된다.

 

상대가 알아들을 만한 선에서 돌려 말하거나, 정말로 잘못했을 때가 아니라도 부탁을 들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 정도는 할 수 있다.

때로는 외부의 상황 탓을 하면서 거절해도 좋다.

 

상대에게 거절 이유를 설명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매달리듯 변명할 필요는 없지만, 상대가 상식적으로 납득할 이유가 있음에도 굳이 설명하지 않은 일은

거절이라는 작업을 너무 고통스럽고 어렵게 만든다.

 

예를 들어 "나도 대화를 더 나누고 싶은데 급하게 마무리할 일이 있어서 이만 들어가 봐야 할 것 같다."

라고 말하는 것은 "너는 지금 눈치 없이 내 시간을 빼앗고 있어!"

또는 앞뒤 설명 없이 "나는 이만 들어갈게."라고 말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거절을 할 때 타인이 느낄 아쉬운 감정,

그리고 현재 부탁이 필요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공감을 표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누군가 업무를 좀 도와달라고 했지만 거절하고 싶은 경우, "지금 너도 너무 바빠서 많이 힘들겠네.

도와줄 수 있으면 좋겠는데 마감이 급한 업무가 여러 개 있어서 돕기가 어렵겠다"

정도 로만 설명할 수 있어도 좋다.

 

마지막으로 나의 자아 경계에 한 치의 흠집도 허용할 수 없다는 식의 생각은 안 했으면 한다.

 

자아 경계는 유연한 것이며, 완벽히 지켜내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잘 지켜내려 노력하면 되는 것이다.

이번에 선을 잘 긋지 못했다고 바로 '호구'가 되거나 나를 다 내어준 것은 아니다.

스스로를 잘 지켜내겠다는 의지와 자신에 대한 믿음만 있다면 경계는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내 마음도 모르고 자꾸 선을 넘어오는 타인이 미운가? 그렇다면 거절하라.

타인이 선을 넘지 않도록 거절하는 것이야 말로 타인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다.

 

거절하는 자신이 나쁜 사람 같은가?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지 못하거나 실망시키는 일은 나쁜 일과는 무관하다.

거절하면 상대가 영원히 멀어질 것 같은가?

만약 정말 멀어진다면 그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멀어질 수 박에 없었던 사람이다.

 

우리가 눈치를 봐야하는 단 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당신이 비로소 나라는 존재에게 조금 더 친절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

 

 

 

 

출처 -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728x90
반응형
LIST